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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의 기원, 사주와 팔자 관념의 등장
2025.06.21 17:35
작성자 : 김만태교수    메일 : ware4u@hanmail.net 조회 : 5,483  

사주명리의 기원, 사주와 팔자 관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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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의 원문은 김만태 교수님의 박사학위논문

「한국 사주명리의 활용양상과 인식체계」(국립안동대학교 대학원, 2010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주명리의 기원, 사주와 팔자 관념의 등장

사주(四柱)는 사람이 출생한 ‘연월일시’의 천간지지(天干地支) 네 기둥을 지칭한다. 사주는 천간과 지지의 여덟 글자로 구성되었으므로 ‘팔자(八字)’ 또는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도 부른다.

사주명리는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천간과 지지로 각각 치환한 후,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통해서 그 상호 관계를 해석하여 사람 명운(命運)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추론 체계를 말한다.

이를 사주추명법(四柱推命法), 팔자(八字)추명법, 시진(時辰)추명법이라고도 하며, 이를 연구하는 분야를 명학(命學), 명운학(命運學), 명리학(命理學), 삼명학(三命學), 사주학(四柱學), 추명학(推命學), 녹명학(祿命學), 팔자술(八字術), 산명학(算命學), 자평학(子平學), 팔자명학(八字命學),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른다. 대체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주’, 중국에서는 ‘팔자’를 이름 앞에 붙여서 지칭한다.

초자연적 존재의 뜻이 드러나는 징표 (조짐)의 차원의 하나인 시간(時間)은 그 자체가 흐르는 속성을 지니며 무형(無形)이라 사람들이 거기에 담긴 초자연적 존재의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한자(漢字)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천문학적 의미보다는 점성술적 의미로서의 부호인 간지(干支)를 가지고 시간을 표시하였다. 이처럼 간지라는 유형의 부호를 통해 무형의 시간을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은 시간에 담긴 초자연적 존재의 뜻[운명, 신의 섭리]을 알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초기의 책력(冊曆)은 과학으로서 천문학적 의미보다는 일종의 신앙으로서 점성술적 의미가 더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일찍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의 해와 달, 수, 화, 목, 금, 토성 등 칠정(七政)의 기운을 부호화한 사주를 통해 개인 운명을 예측하고자 하였다.

사주와 비슷한 것으로 서양의 점성술이 있다. 점성술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의 별의 배치를 그림으로 옮긴 호로스코프 (horoscope)라고 부르는 ‘천궁도(天宮圖)’를 통해서 사람의 운명을 예측한다.

즉 사주와 점성술은 무형의 ‘때’를 어떤 부호로 표시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만 다를 뿐, ‘때’를 통해 개인의 운명에 관한 신 (초자연적 존재)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자 하는 점에서는 결국 같다. 이를 볼 때 사주는 주역이 아니라 점성술과 더 친연하다.

이는 무형의 시간에 담긴 초자연적 존재의 뜻을 유형의 부호를 통해 알아내어 앞날을 예지하려는 것으로서 일종의 ‘시상점(時相占)’이다. 그 예로는 자평사주, 당사주, 점성술, 토정비결, 택일, 궁합 외에도 자미두수, 하락이수, 대정수, 단시점 등이 있다. 시상점의 범위는 의외로 매우 넓어 심지어 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띠별 오늘의 운세’도 시상점에 포함된다.

사주팔자에 의한 운명의 예지 판단 술법이 오래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하지만 그 기원은 자세히 알기 어렵다.

사주명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첫째, 음양오행 사상이 정립되어야 하고, 둘째, 십간, 십이지가 각기 음양오행으로 배속되어야 하며, 셋째, 10간, 12지의 최소공배수인 육십갑자로 날짜를 세는 간지력(干支曆)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넷째, 사람이 태어난 때[時]로 그 명(命)과 운(運)의 길흉을 해석할 수 있는 점성술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 또한 다섯째, 사람의 명은 처음 태어날 때 그가 받은 품기(稟氣)에 의해서 길흉화복이 이미 결정된다는 사상도 그 바탕에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전제 조건이 형성된 시기를 고찰함으로써 사주명리의 기원을 추리할 수 있다.

음양오행설은 전국시대 말 추연(鄒衍)에 의해 이론적으로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이후에 한나라 유학자들, 특히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추연의 음양오행 사상은 더욱 체계화되며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재이설(災異說) 등으로 발전하였다. 이로부터 음양오행설은 술수학에 튼튼한 기초를 제공해주는 방대한 사상이 되었다.

그리고 진한(秦漢)시대에 음양오행설이 크게 흥행함에 따라 많은 사물에 오행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10간, 12지도 음양오행의 체계 속으로 편입되었다.

특히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 중기 유안(劉安)이 학자들을 모아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간지를 오행에 배속하였고, 다시 음양으로 구분하였다.

갑을(甲乙)과 인묘(寅卯)는 목(木)이며, 병정(丙丁)과 사오(巳午)는 화(火)이며, 무기(戊己)와 사계(四季)의 진미술축(辰未戌丑)은 토(土)이며, 경신(庚辛)과 신유(申酉)는 금(金)이며, 임계(壬癸)와 해자(亥子)는 수(水)이다.

일日[간干]에서 갑(甲)은 강하고 을(乙)은 유약하며, 병(丙)은 강하고 정(丁)은 유약하니, 계(癸)까지 이러하다. [淮南子] 天文訓, “凡日甲剛乙柔, 丙剛丁柔, 以至於癸.”

10간과 12지를 각기 오행으로 나눈 후, 갑, 병, 무, 경, 임은 양(陽)의 강건한 성질을 띠고, 을, 정, 기, 신, 계는 음(陰)의 유약한 성질을 띤다고 하였다. 그리고 12지와 오행의 성쇠(盛衰) 관계도 정하였다.

목(木)은 해(亥)에서 나고 묘(卯)에서 성했다가 미(未)에서 죽는데, 해묘미(亥卯未) 모두 목이다.

화(火)는 인(寅)에서 나고 오(午)에서 성했다가 술(戌)에서 죽는데, 인오술(寅午戌) 모두 화이다.

토(土)는 오(午)에서 나고 술(戌)에서 성했다가 인(寅)에서 죽는데, 오술인(午戌寅) 모두 토이다.

금(金)은 사(巳)에서 나고 유(酉)에서 성했다가 축(丑)에서 죽는데, 사유축(巳酉丑) 모두 금이다.

수(水)는 신(申)에서 나고 자(子)에서 성했다가 진(辰)에서 죽는데, 신자진(申子辰) 모두 수이다.

이 관계는 나중에 지지 삼합(三合)의 구성 원리가 된다.

또한 천간인 10간을 모(母)에, 지지인 12지를 자(子)에 비유하여 간지의 상생상극 관계로써 의(義), 보(保), 전(專), 제(制), 곤(困) 등을 정하였다. 이렇게 오행의 상생상극 관념과 육십갑자가 결합하면서 간지는 더이상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상수화(象數化), 신비화된 관념과 복잡한 술수적(術數的)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수(水)는 목(木)을 낳고, 목(木)은 화(火)를 낳으며, 화(火)는 토(土)를 낳고, 토(土)는 금(金)을 낳으며, 금(金)은 수(水)를 낳는다. 자(子)인 지지(地支)의 오행이 모(母)인 천간(天干)의 오행을 생하는 것을 의(義)라 하며, 모 (천간)가 자 (지지)를 생하는 것을 보(保)라 하며, 자와 모가 서로 같은 것을 전(專)이라 하며, 모가 자를 이기는 것을 제(制)라 하며, 자가 모를 이기는 것을 곤(困)이라 한다.

이렇게 기원전 2세기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간지를 오행에 배속하고, 음양으로 구분하고, 성쇠(盛衰) 관계, 상생상극 관계 등을 정하였다.

간지(干支)의 기원에 관해서는 천황씨(天皇氏) 창제설, 대요씨(大撓氏) 창제설, 황제(黃帝)시대 하강설 등으로 학설이 나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려우므로 여기에서 학술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갑골문에서 보듯이 상(은)나라 때는 간지가 하루의 명칭이었기에 간지를 통해 하루하루를 표기했으며, 햇수를 간지로 표기하는 관습은 한나라 때에 시작되었다. 갑골문의 복사(卜辭)와 기사(記事)에 점친 날의 간지가 나오지만 단지 점을 친 날짜를 표기할 목적에서 간지를 사용했을 뿐이고 점(占)의 방식,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예를 들어, “경술일에 빈(賓)이 점쳐 묻습니다. “돌아오는 갑인일에 상갑(上甲)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소 다섯 마리로 할까요?”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간지로 년을 표기하는 것을 간지기년법(干支紀年法)이라 하는데, 간지기년법 이전에는 세성(歲星)기년법과 태세(太歲)기년법이 있었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서는 “세성이 매년 30과 12분의 7도를 운행하고 대략 매일 12분의 1도를 운행하여 12년이면 하늘을 일주한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목성인 세성은 매년 하늘의 12분의 1을 운행한다. 12년은 12지의 수와 합치되므로 전국시대 중기부터 목성인 세성의 소재로써 연도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세성기년법은 목성인 세성이 하늘을 12년에 한 바퀴 돈다는 규칙에 근거해서, 12등분한 하늘[적도]을 12차(次)로 삼아서 그 해를 표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성은 서(에서)→ 동 (반시계방향)으로 운행하므로 이전부터 있던 12지궁이 동(에서)→ 서 (시계방향)로 향하는 것과 상반되어 역년(曆年)을 표기하는 데 불편하였다. 그래서 세성과 대응하여 동(에서)→ 서로 운행하는 가상의 태세(太歲)를 설정하여 12지궁과 방향을 일치시켰다. 이것이 태세기년법이다.

그러나 전한(前漢) 말 유흠(劉歆)에 의해 목성의 실제 공전주기가 11.86년으로 밝혀지면서 목성이 매년 적도상을 1차씩 운행하여 12년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는 세성기년법과 태세기년법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흠은 약 86년마다 1차의 오차가 생기므로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초진법(超辰法)을 주장했으며, 후한(後漢) 초 54년에 비로소 이러한 오차를 수정하였다. 이로 인해 그동안 역년을 표기하던 태세기년법은 목성의 실제운행과 결별했으며, 이때부터 목성의 운행과는 상관없이 육십갑자의 순서대로 기년(紀年)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주팔자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간지기년법이다.

그러나 간지기년법이 일반화된 것은 85년에 그동안의 태초력(太初曆)이 폐지되고 사분력(四分曆)이 개정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사주명리를 비롯한 술수학은 비로소 역법(曆法)과 연결고리를 가지게 되었다. 간지기년(干支紀年) 이후 간지기월(干支紀月)이 가능해졌고,

간지기일(干支紀日)은 갑골문에서도 보듯이 적어도 상(은)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에 따라 간지기시(干支紀時)도 자연스레 가능해졌다. 음양오행과 육십갑자가 결합하고 간지력이 일반화되고,

후한 말 2세기 중엽 환제(桓帝) 때 인도로부터 불교와 함께 서역의 성수(星宿)신앙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어 도교의 점성 관념과 교섭되기 시작하면서 3세기경 사주명리는 술수무대에 나설 채비를 갖추게 되었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중국 전통의 점성(占星)신앙에서는 주로 제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차원의 천문 우주론적 맥락이 강하였지만,

불교가 성행하기 시작한 3세기 이후 위진(魏晉)시기 이래 불교와 도교의 점성술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 개개인에 대한 점복이나 산명술(算命術)로 확장된다.

점성술이 구체적인 인간의 운명학으로 운용되는 방법에는 직성(直星) 또는 본명성(本命星), 본명궁(本命宮) 관념의 성립이 중요하다. 직성이란 매해 또는 매달, 매일을 담당하는 별자리가 달리 설정된다는 관념이며, 본명성 신앙은 여기에 기초하여 그 태어난 해 또는 날의 성수가 인간 자신의 운명을 담당한다는 믿음을 말한다.

7세기 당나라 때를 전후하여 이러한 직성 관념과 본명성 신앙이 매우 발달하며 점성술이 크게 발전하고 체계화되었다. 사주명리에서 통변성(通變星)의 근원이 된 칠성사여오성술(七政四餘五星術)도 인도와 서역인 중동의 점성술이 중국에 전래되어 발전한 것이다.

통변성(通變星)은 육신(六神), 십성(十星)이라고도 하며,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음양의 차이, 오행의 생극 관계 등을 가려서 명주(命主)의 혈연, 사회관계 등을 나타낸다.

칠정사여오성술(七政四餘五星術)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기본 자료로 일월오성(日月五星)의 일곱 개 실성(實星)인 칠정(七政)과 나후, 계도, 월패, 자기의 네 허성(虛星)인 사여(四餘)로 구성된 많은 성좌(星座)의 간지를 이용하여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는 점성술의 일종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문화의 유례없는 교류에 힘입어 인도와 서역의 발달한 역법과 점성술이 연이어 들어오면서 중국에서 사주명리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켰다.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은 사람 운명의 오묘함에 대해 탐구를 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왕충은 그의 저술 [논형(論衡)]에서 “사람이 행운을 만나거나 거듭해서 해를 당하는 것은 모두 명 때문이다. 생사수요(生死壽夭)의 명이 있는가 하면 빈부귀천의 명도 있으며” “사람이 명을 받음에 부모가 생명을 불어넣어 줄 때 이미 그 길흉이 결정된다.”라고 하여 품기설(稟氣說)과 정명론(定命論)을 구체적으로 펼쳤다.

이런 학설은 사람이 잉태된 날을 추산하여 길흉을 논하는 ‘태원법(胎元法)’에 기초적인 이론 근거를 제공하였다. 개인의 운명은 처음 태어날 때 그 한순간의 품기(稟氣)에 의해 결정된다는 왕충의 대담한 가설은 후대의 인상술(人相術), 팔자명리설, 운명론에 깊은 암시를 주었고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사주(四柱)’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점과 사주명리의 창시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다. 서자평 기원설 (10세기 중, 오대(五代) 말에서~북송(北宋) 초), 이허중 기원설 (9세기 초), 원천강 기원설 (7세기 초), 곽박 기원설 (4세기 초) 등이 그것이다.

김만태 교수는 4세기 초 곽박 기원설에 일단 동의하면서도 시기적으로 좀 더 소급될 여지가 있다고 하였다. 4세기 초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저술하고 10세기 중엽 서자평(徐子平)이 주석한 [옥조신응진경(玉照神應眞經)]에 ‘사주’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점과 앞서 살펴본 시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4세기 초까지 사주명리의 기원이 소급된다.

‘팔자(八字)’는 문헌상 ‘사주(四柱)’보다 한참 뒤늦게 등장한다. 북송(北宋) 초(10세기 중엽) [옥조신응진경]의 서자평 주석, 서자평이 찬술한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琭子三命消息賦注)]와 「명통부(明通賦)」, 남송(南宋) 말(13세기 중엽) 서대승(徐大升)이 찬술한 「원리부(元理賦)」와 [자평삼명통변연원(子平三命通變淵源)](1253년)의 「정진론(定眞論)」과 「희기편(喜忌篇)」, 명나라 때 만민영(萬民英)이 찬술한 [성학대성(星學大成)](1563년) 등에 ‘팔자(八字)’라는 단어가 두루 등장한다. 이로 미뤄볼 때 4세기 초에 ‘사주’가 먼저 사용되었고, 이후에 차츰 ‘팔자’도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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