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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전 사주명리(四柱命理)의 유입 과정에 대한 고찰
2015.04.01 14:20
작성자 : 김만태교수    메일 : ware4u@hanmail.net 조회 : 7,686  
   조선 전기 이전 四柱命理의 유입 과정에 대한 고찰.pdf (1.8M) [56] DATE : 2015-04-01 14: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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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전 사주명리(四柱命理)의 유입 과정에 대한 고찰

 

김만태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한국문화 52호 | 2010.12

 

                 1. 머리말
                 2. 사주명리의 기원
                 3. 삼국-고려시대의 사주명리 유입의 단서
                 4. 조선 전기 사주명리의 유입과 전개
                 5. 맺음말

 

  조선 전기까지 사주명리의 유입과정을 고찰해보면, 8-9세기 경 남북국의 渡唐유학생과 사신·선승·지방호족·6두품세력 등을 중심으로 사주명리의 초기형태가 唐으로부터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이후 14세기 이제현과 이색의 글에서 사주명리에 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점,『궁통보감』의 原名인『난강망』에 관한 기록이 조선 초기인 1430년에 등장하며, 王命에 의해 1458년에 서거정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주명리서로 추정되는『오행총괄』을 저술하였다는 점, 남송 말 1253-1258년간 남송의 수도 전당에서 간행되었던 서대승의『자평삼명통변연원』이 1466년에 편찬된『경국대전』에 命課學의 試取과목으로 채택되었다는 점,

  天文·曆數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기 위해 고려 초기부터 설치되었던 太卜監과 太史局·書雲觀 등의 소임 중에 사주명리와 관련된 기능이 계속 없다가 조선 초기 觀象監의 기능으로 占算이 포함되는 점, 중국에서 사주명리가 근대적인 체계를 형성하던 13세기에 고려는 오히려 몽고 등 북방민족과의 오랜 전쟁으로 대외 문화의 수입에 여유가 없었으며 1270년 몽고와의 강화이후 元나라와 문물 및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는 시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오늘날 사주명리의 근간을 이루는 자평명리가 유학생·사신·귀화인·신흥사대부·국경지역의 지식인 등을 통해 13세기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14세기 초에 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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