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태 교수의 KCI 연구논문 ‘역서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의 핵심 내용을 요약·정리한 자료입니다.
김만태, 「역서(曆書)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2007.06
역서(曆書)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1. 머리말
달력은 날짜를 한 해와 한 달, 그리고 한 주 안에 자리를 잡아 이름을 붙여주는 체계적인 방법이자, 인간이 인위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발명품으로 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소설 속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평일과 안식일을 구별하기 위해 십자가 기둥에 칼자국을 내며 시간을 계산했듯, 현대 사회에서 달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달력은 각 종교, 국가, 문화권별로 제각기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독특한 하위문화(subculture)를 형성하는데, 본 논문에서 다루는 ‘택일문화(擇日文化)’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시간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며, 혼인, 출산, 이사, 개업 등 인생의 중대사일수록 그 결과의 길흉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일을 신중하게 정하고자 한다. 과거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피흉추길(避凶諏吉,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나아감)하기 위한 방편으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의거해 좋은 날을 고르고 나쁜 날을 피하는 택일법을 사용해 왔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미래 예측 능력이 향상되면서 전래의 택일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체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대중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은 오히려 가중되었고, 그 결과 현대 사회에서도 ‘손 없는 날’이나 ‘길일’에 이사와 결혼이 집중되는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택일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미신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관습이자 문화 차원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택일 관습을 세시풍속이나 민속신앙의 하위 요소로만 단편적으로 다루었을 뿐,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택일풍속의 기원과 현황을 짚어보고, ‘택일문화 연구모델’을 제안한 뒤, 택일문화의 기반인 역서(책력)와 택일력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거시적으로 고찰하여 향후 체계적인 민속학적 연구의 밑거름을 제공하고자 한다.
2. 택일풍속의 기원과 현황
1) 택일풍속의 기원
택일의 본질적인 동기는 좋은 날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행사의 결과 역시 훌륭하기를 기대하는 인간의 심리에 있다. 길일과 흉일에 대한 믿음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에는 달의 위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에서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의 순환체계에 기반한 간지력(干支曆)이 고안되면서 한층 정교한 운명 예측과 택일법이 발달하였다. 은대(殷代) 갑골문에서 발견되는 간지표는 당시의 일력(日曆) 역할을 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적 대사, 전쟁, 수렵, 농경의 성공 여부를 점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인들은 해, 달, 날의 간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날을 택해 결혼, 이사, 개업, 여행 등을 행하면 복이 오고 성공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오합(五合) 사상뿐만 아니라 오행상극(五行相剋), 구궁(九宮), 십이궁(十二宮)에 의한 해의 길흉, 이십팔수(二十八宿)에 의한 달의 길흉, 육요(六曜)에 의한 날의 길흉 등을 복합적으로 맥락화하여 매우 정밀하고 복잡한 택일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혼인이나 이사 같은 대사뿐 아니라 장 담그기, 강아지 들이기, 손발톱 깎는 날까지 일상 전반에서 택일을 적용하였다.
우리나라 문헌상 택일의 구체적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열전〉의 ‘설씨녀(薛氏女)’ 조에는 진평왕(재위 579~632) 대를 배경으로 혼인을 앞두고 "날을 골라서[卜日] 예식을 올려도 늦지 않겠다"라고 말한 기록이 등장하여, 이미 6세기 말 평민 계층에서도 혼인 택일 관습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증명한다.
길흉일을 가리기 위해서는 역서(曆書)의 보급이 필수적이다.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중국으로부터 역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는 영류왕 7년(624년)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역서를 구했고, 신라는 문무왕 14년(674년)에 대나마 덕복이 당에서 일력 만드는 법을 배워와 신력(新曆)을 반포하였다. 이러한 역서 도입은 국가 행정과 의례뿐만 아니라 민간의 택일 관습이 정착되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자주 등장하는 일자(日者), 일관(日官) 등의 직책은 국가의 길흉일을 판별하는 전문 택일가들이었음을 시사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택일 풍속은 국가와 왕실, 민간 모두에서 한층 더 성행하였다. 변계량의 《춘정집》에는 기우제 날짜를 택일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문건의 《묵재일기》(16세기)에는 아이를 위해 주성(主星)에 제사 지낼 때, 죽은 딸의 천도굿을 할 때, 사위를 맞이할 날을 정할 때 점복자에게 택일을 의뢰한 구체적 민간 사례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조의 《홍재전서》 역시 성곽이나 건물을 수리할 때 날을 점쳐 길일을 얻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
이처럼 천오백 년 이상 지속된 과도한 택일 경향에 대해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비판적 인식도 적지 않았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1482년)은 병에 걸려 약을 먹거나 초상이 나 성복(成服)을 할 때마저 역서의 택일에 얽매이는 세태를 해학적으로 비판했다. 실학자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역서에 기재된 ‘의제사(宜祭祀)’, ‘의혼인(宜婚姻)’, ‘불의출행(不宜出行)’ 같은 미신적 문구를 모두 삭제하고, 하소정(夏小正)과 월령(月令) 중 국가 행정에 유익한 농업 및 절기 정보를 편집해 넣을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관인 관상감(觀象감)이 발행하는 책력의 역주(曆註)에는 날짜별로 행하기 좋은 일(宜)과 해서는 안 될 일(不宜)이 끊임없이 기재되어 대중의 삶을 지배해 왔다.
2) 택일풍속의 현황
1995년 설문조사(김홍철 교수, 전북 익산시 성인 600명 대상)에 따르면, ‘혼인 시 택일 여부’에 대해 68.3%가 부정적이었고, ‘이사 시 택일 여부’에 대해서도 70.8%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 설문 결과만 보면 현대인들이 택일 관습을 비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과 언론 보도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음력으로 '손 없는 날'이나 특정한 길일이 되면 예식장과 이삿짐업체에는 평소보다 2~3배의 예약이 몰려 극심한 정체와 특수를 누린다. 예컨대 입춘이 두 번 겹쳐 혼인에 길하다고 알려진 2006년 ‘쌍춘년(雙春年)’에는 예식장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9%나 신장하여 서비스업 평균 성장률의 2배를 상회했다. 또한 2007년 ‘황금돼지해’ 속설에 편승해 출산·육아·금융·유통업계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사례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 의례를 넘어 컴퓨터 게임 개발사가 신작 게임의 오픈 베타 서비스 시작 날짜와 시간을 역술인에게 의뢰하는 등 택일의 대상 영역이 현대 산업 분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평소에는 관념적으로 택일을 부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중대사를 맞이하면 길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인간 본연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왕이면 좋은 날을 선택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들도 다 하는데 굳이 나쁘다는 날을 택할 이유가 없다"라는 타인 지향적 의식구조와 동조 심리 역시 강하게 작용한다.
나아가 세시풍속에서도 안택고사(安宅告祀)나 홍수매기(橫數막이, 정초에 액운을 풀어주는 의례)를 행할 때 가족의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정초의 길일을 잡았으며, 마을의 동제(洞祭)를 지낼 제관을 선정할 때도 생기복덕이 맞는 인물을 골랐다. 호남 지방의 추수감사제인 ‘올베심리’ 역시 전통 택일서인 《천기대요》의 기준에 맞춰 행해졌으며, 일상적인 장 담그기마저 정월의 첫 말날(上午日)이나 화(火)의 기운이 강한 날을 택해 전승되어 오고 있다.
3. 택일문화 연구모델과 연구방향 모색
본 연구는 이러한 택일 풍속의 양면성을 분석하기 위해 ‘택일 대상’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연구모델을 제안한다(<그림 1> 참조).
택일대상에 따른 택일문화 연구모델
1) 연례행사형 모델 (일면 연구)
장 담그기와 같은 주기적이고 일상적인 세시 행사의 경우, 주로 집안의 주부가 조상이나 주변 공동체로부터 전승받은 민간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날짜를 선택한다. 고도의 역학적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으므로, 행사를 직접 주관하는 ‘행사자’와 날짜를 잡는 ‘택일자’가 일치한다. 따라서 이 영역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는 행사자(택일자) 집단만을 조사하면 족하므로 ‘일면성(一面性)’을 지닌다.
2) 일생 중대행사형 모델 (양면 연구)
출산, 혼인, 이사, 개업 등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는 대사의 경우, 단순한 전승 지식을 넘어 음양오행과 역(易)의 복잡한 원리를 적용해야 하므로 일반 대중이 스스로 날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 행사자가 철학관, 역술인, 만신, 스님 등 소수의 전문 택일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의뢰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행사자 ≠ 택일자, 행사자 > 택일자).
이 경우 택일 관습에 대한 연구는 다수의 행사자를 직접 조사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소수의 전문 택일자들을 면담하여 "사람들이 주로 어떤 일로 택일을 의뢰하는가?"를 복수 응답 형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실제로 대구·안동 지역의 역학 전공자 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가장 많이 의뢰받은 택일은 혼인과 이사(각 13명), 개업(11명), 출산(9명), 장례·이장·집수리(각 3명) 순이었다. 과거 전통 사회의 택일서에서 건축 관련 항목(기조문)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것에 반해, 현대에는 아파트 중심의 공동 주택 문화 확산으로 건축 택일은 격감한 반면, 계획 출산 및 제왕절개 확산으로 출산 택일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소수의 '택일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현대 택일문화의 구조적 변화를 포괄적이고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양면성(兩面性)’ 연구의 대표적 사례이다.
3) 택일문화 연구의 체계적 진행 방향
택일문화는 본질적으로 책력, 즉 역서(曆書)라는 지식 체계가 만들어낸 하위문화이다. 따라서 그 진행 방향은 국가가 발행한 역서의 시대적 변화를 살피는 고찰에서 출발하여, 전통 택일서인 《천기대요(天機大要)》와 만세력(萬歲曆)의 활용 관계를 규명하고, 현대 민간에서 발행하는 ‘민편 택일력(民編 擇日曆)’의 수록 항목을 분석함으로써 총체적인 관계 구도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택일문화 관계도
4. 역서에 나타난 택일인식의 시대적 변화
해방 이전까지 역서의 간행은 국가가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였으며, 민간에서의 사사로운 역서 간행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다. 국가는 매년 발행하는 관편 역서(官編 曆書)의 일주(日註)에 해당 날짜의 길흉을 직접 기재하여 백성들의 일상 행동 지침을 제공했다. 고려 말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관편 역서의 길흉 관련 항목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편 역서의 시대적 변천 세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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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력·시헌력·명시력 시기 (조선시대~대한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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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명시력까지 관편 역서는 연신방위도(그해 방위의 길흉 신을 그린 그림), 가취주당도(결혼 날짜의 길흉을 보는 그림), 월건, 일진, 28수, 12직, 납음오행, 그리고 일일 길흉인 ‘의(宜)’와 ‘불의(不宜)’를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기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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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1 (1795년 세차을묘 시헌서): 음력 정월 초사흗날 일주에 "초사일정해토여개의제사목욕 불의출행이사"라 적혔다. 이는 날의 간지가 정해(丁亥)이고, 납음은 옥상토(屋上土)이며, 28수는 여(女)수, 12직은 개(開)일이므로, 제사와 목욕은 해도 좋으나 외출과 이사는 불길하다는 엄격한 행동 규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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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2 (1906년 세차병오 명시력): 음력 2월 20일 일주에 제사, 혼인, 옷짓기, 기둥 세우기는 이로우며 상량(上樑)은 진시(오전 7~9시)에 행하는 것이 길하고, 외출과 흙을 다루는 동토(動土)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인 시간과 행위 지침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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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개혁과 과도기적 절충 (1896~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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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이 공식 채택되면서 역서 편찬진 내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 발간된 양력 기준 역서에는 과학적 천문 시각(합삭·망)만 기재하고 미신적 요소로 여겨진 수(宿), 직(直), 길흉 안내를 전면 삭제했다. 그러나 단발령 등 급진적 개혁에 대한 민심의 저항이 격렬하고 의병이 봉기하는 등 정국이 혼란해지자, 통치 당국은 대중의 오랜 관습을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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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동안 양력 역서와 전통 음력 명시력이 공존하는 실험적 기간을 거친 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민력》(1909~1936년) 단계에 이르러서는 타협책이 마련되었다. 대중의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연신방위도, 가취주당도, ‘의(宜)’일 기재는 그대로 유지하되,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금기 조항인 ‘불의(不宜)’ 항목만 역주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방식으로 묵인과 절충을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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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단절과 민간으로의 이전 (1937년~해방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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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역서가 전통 택일 관습과 완벽하게 결별한 시점은 1937년이다. 중일전쟁을 도발하며 한반도를 전시동원체제로 재편한 일제는 내선일체와 민족말살정책을 감행했다. 한글 신문과 잡지를 폐간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폭압적 상황 속에서, 1937년도 관편 역서(약력)는 날의 간지(일진)만을 남겨둔 채 모든 길흉 관련 신살과 방위도, ‘의’ 문구를 난폭하게 전면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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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인 1946~1953년 사이 잠시 28수와 12직의 기록이 부활하기도 했으나, 1954년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공식 역서는 천문학적 정보만을 기재할 뿐 택일 관련 정보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1961년도 공식 역서 서문에서 이원철 중앙관상대장이 사주, 궁합, 택일에 맹종하는 행태를 두고 "문명인으로서 이 얼마나 수치스런 처사인가"라며 강하게 질타했듯,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 술수학은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공식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던 1,500년 전통의 택일 안내자 역할은 해방 이후 민간 출판사가 발행하는 ‘민편 택일력’ 시장으로 완전히 이전되었다.
5. 택일서와 택일력을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양상
1) 전통 택일서의 계보와 역사적 의의
민간 출판사가 날짜별 길흉을 정리한 택일력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그 준거가 되는 정통 택일서(擇日書)가 존재해야 한다. 조선 시골 민가에서는 서울의 일관(日官)에게 찾아가 택일을 묻는 번거로움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적인 택일 지식 보급을 원했다. 이에 따라 홍만선의 《산림경제》 〈선택〉 편을 비롯해 다양한 전문 서적이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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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요신서 (15세기 초, 박흥생): 혼인, 동토, 제사, 의약, 안장 등 인간의 출생부터 사망, 농사에 이르기까지 일상 모든 행위의 방위와 길흉을 수록한 사대부 가업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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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요략 (15세기 중엽, 이순지): 세종 대의 명신 이순지가 나날의 행사에서 방위와 시간별 간지의 길흉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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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대요 (1636년, 성여훈 간행): 명나라 임소주의 저작을 도입한 책으로, 병자호란 후 유실되었다가 1653년 시헌력 도입 첫해에 맞춰 재간행되었다. 국가의 안녕을 역수(曆數)에 기대려 했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조선 후기 민관 전체를 지배한 최고의 방서(方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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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길통의 (1795년): 정조의 왕명에 따라 청나라의 《협기변방서》와 《상길통서》를 관상감 관리들이 요약·수정하여 편찬한 국가 공인 택일 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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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기요 (1867년, 남병길): 기존 택일서들의 누적된 오류를 고치고 월기일, 오항용사, 가취주당도 등을 정밀하게 재해석한 책 상·하 2책.
특히 정조 15년(1791년)에는 신실(神室) 개수 작업 중 택일 오류가 발생하자, 정조가 명과학(命課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급 관료 선발 시험(취재) 과목을 기존 사주 중심의 '녹명서'에서 실제 길일을 가리는 '택일서'로 전격 교체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국가의 택일 중시 경향은 관료층을 거쳐 민간으로 강력하게 파급되어 택일 관습을 더욱 공고히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천기대요(1902년 증보본)의 구조와 현대 택일력의 편집 체계
현재 발행되는 모든 현대 택일력은 1902년 지송욱이 최종 증보한 《증보신본 천기대요》의 이론적 원리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전통 《천기대요》의 원본 구조는 술수의 기본인 태극팔괘, 하도낙서, 간지합을 서두에 배치한 뒤, 인간 삶의 3대 대사인 상장문(喪葬門, 장례·이장), 기조문(起造門, 건축·상량), 혼인문(婚姻門)을 핵심 골격으로 삼았다. 그 외 입택, 이사, 상관부임, 제사, 출행, 장 담그기뿐만 아니라 벌목, 양잠, 가축 기르기, 머리감기, 이발, 소아 단유(젖떼기)에 이르기까지 전근대 농경사회의 생활 전반을 규율했다.
반면 본 연구가 분석한 현대 택일력 3종(정해년 생기복덕 택일력, 정해년 생활민력, 정해년 택일력)의 편집 체계는 현대적 변용이 뚜렷하다. 본문에는 월구성, 양력, 요일, 음력, 일진 오행, 28수, 12직, 구성, 혼인주당, 이사주당, 행사 길흉일을 일목요연하게 병치하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리트머스 시험지 형태로 간소화했다. 지(支)의 개념을 모르는 현대 대중을 위해 날짜 옆에 쥐, 소, 호랑이 등 동물 그림(지형상)을 그려 넣는 시각적 편의성도 도입했다.
3) 시대 환경에 따른 택일 항목의 보존과 소멸
현대 택일력은 전통 《천기대요》의 원리를 따르면서도 유기적인 가치 조정을 단행했다. 과거 전통 농경사회의 핵심 축이었던 양잠(누에고치), 가축 번식, 씨뿌리기와 모내기(종시), 벌목, 천우비(소코뚫기) 등 현대 도시 생활과 동떨어진 항목들은 과감히 전면 삭제되었다. 대신에 현대적 이사, 회사 개업, 취임, 각종 계약 및 돈거래, 관공서 서류 제출, 학교 입학, 장거리 여행, 자동차 운전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행동 지침 위주로 항목을 전면 선별·재배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강조되는 핵심 키워드는 중요 신살방, 생기복덕, 이사, 혼인, 궁합, 집수리, 출산, 개업, 이장, 삼재, 손이다. 이는 매년 수만 부 이상 발행되는 택일력 시장의 지표를 통해 현대인들이 여전히 가택의 이동과 가족 구성원의 변동이라는 근원적 불안 요소 앞에서 전통적 택일 관습에 강력히 의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4) 날가림(택일)과 방위가림(택방위)의 상호작용
현대 택일력은 날짜를 가리는 '날가림'뿐 아니라, 공간의 길흉을 가리는 '방위가림'을 여전히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그 대표적 증거가 책머리나 기표지에 축소되어 수록되는 연신방위도(年神方位圖)의 보존이다.
연신방위도는 그해의 자백구성도(紫白九星圖)를 중심으로 24방위를 구분하고 태세, 박사, 역사, 세살, 대장군, 상문, 조객, 삼살 등의 제신을 1년간 머물게 하여 방위의 길흉을 주재하도록 한 그림이다. 이 중에서도 현대 택일력이 별도로 표기하며 극도로 경계하는 신살은 대장군(大將軍)과 삼살(三殺)이다. 이 방위로는 건물을 새로 달아내거나 집수리를 해서는 안 되며, 흙을 다루거나 우물을 파서도 안 되고, 묘를 써서도 안 된다는 금기가 명확히 작동한다. 만약 이 방위를 범하여 움직이면 귀신이나 땅의 신을 성나게 하여 재앙을 입는다는 ‘동티(동토)’ 신앙이 현대 택일 현장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심리적 기저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5) 민중의 주체적 수용과 문화적 재해석 (장 담그기 분석)
본 연구는 세시 풍속 중 현재까지 전승되는 ‘장 담그기’ 택일 분석을 통해 매우 흥미로운 민속학적 발견을 도출한다. 흔히 민간에서는 음력 정월의 첫 말날(上午日)에 장을 담가야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임동권 등의 기존 연구자들은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이고, 말의 피가 진한 것처럼 장 빛깔이 진하고 달기 때문"이라는 표면적 상징으로 이를 해석했다.
그러나 상층 문화의 원전인 《천기대요》 〈조장길일(造醬吉日)〉 조를 정밀히 추적해 보면, 장 담그기에 좋은 날은 정묘(丁卯), 병인(丙寅), 병오(丙午), 천덕합, 월덕합, 만·성·개일 및 오일(午日)이며, 신일(辛日)은 철저히 피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정묘, 병인, 병오, 오(午)는 모두 순수한 ‘화(火)’의 기운에 속하는 날들이다. 장을 담그고 숙성시키는 데는 따뜻한 열기와 화의 기운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원전은 화왕(火旺)한 날들을 나열한 것이다.
하지만 한문과 복잡한 역학 지식이 없는 일반 민중과 주부들이 천덕합, 월덕합, 12직의 만·성·개 개념을 일일이 기억하고 계산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기층 민중들은 원전의 복잡한 화(火) 기운의 날들을 통째로 묶어, 12지지 중 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동물인 ‘말(午)’의 날, 즉 말날[午日]이라는 직관적인 개념으로 확장·축소하여 암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견은 기층 민중들이 지배층의 상층 술수문화나 제도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지배당하거나 맹종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필요와 편의에 맞춰 상층 지식을 주체적으로 거르고, 단순화하며, 자기 나름의 생활 문화적 해석을 부여해 수용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엘리트 중심의 역법사 연구를 넘어,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민속학적 관점의 택일문화 연구가 지니는 진정한 학술적 가치이다.
6. 맺는말
택일문화는 천오백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의 내면과 일상 의식을 지배해 온 핵심적인 민속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에서 독자적인 연구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화되어 왔다. 본 연구는 택일을 매개로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의 민중 심리를 거시적으로 재조명하고자 시도했다.
본 연구의 핵심 결론 및 학술적 기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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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일 대상에 따른 체계적 연구모델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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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이 없는 주기적 세시 행사인 ‘연례행사(행사자=택일자)’의 일면 연구와 고도의 전문 역학 지식이 개입되는 ‘일생 중대행사(행사자≠택일자)’의 양면 연구를 구별하는 연구모델을 정립했다. 특히 철학관 등 소수의 전문 택일자가 상주하는 공간 역시 엄연한 민속학적 현장임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건축 택일이 쇠퇴하고 출산 택일이 급부상하는 등의 구조적 지형 변화를 효율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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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통제에서 민간 시장으로의 이전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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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국가 관상감이 역서의 일주(日註)를 통해 대중의 행동 금기와 길흉을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안내하던 방식이, 1937년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약력 반포)을 기점으로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고찰했다. 해방 이후 관편 역서가 근대 과학 천문학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내재해 있던 대중의 택일 욕구는 민간 출판사의 ‘민편 택일력’ 발행이라는 자율적 시장 구조로 완벽히 이전되었음을 거시적 안목에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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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콘텐츠의 현대적 변용과 민중의 주체성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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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택일력이 《천기대요》의 정통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전근대 농경사회의 가축·재배 항목은 과감히 도태시키고 계약, 개업, 출산, 운전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항목 위주로 적응·변화해 온 양상을 입증했다. 더불어 ‘장 담그는 말날’의 사례에서 보듯, 민중들은 복잡한 음양오행의 지식을 자신들의 생활 편의에 맞춰 주체적으로 재해석하고 변형하여 수용하는 능동적 문화 창조자였음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택일은 사라져 버린 과거의 미신이 아니라, 미래의 불안을 통제하려는 인간 본연의 심리와 결부되어 현대 사회의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는 유기적인 생활 텍스트이다. 따라서 향후 ‘택일문화 관계도’에 등장하는 관편 역서, 천기대요류 방서, 현대 만세력, 민편 택일력, 그리고 행사자와 전문 택일자 간의 상호작용 전반을 망라하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후속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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