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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주명리와 과학의 관계
2012.05.31 12:49
작성자 : 김만태교수    메일 : ware4u@hanmail.net 조회 : 12,486  


4. 사주명리와 과학의 관계


김만태  문학박사/서라벌대학교 풍수명리과 전임교수·학과장


인간은 생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연구 방법을 추구해 왔다. 그 중에는 과학적인 방법도 있고 직관적인 방법도 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이 세계의 완전한 상(象)을 제공할 수 없다. 고전 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물리적 현상 같은 것의 기술에는 유용하다. ‘유기적’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동양사상가들의 견해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불가분하고 조화된 전체의 불가결한 부분들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기계론적 세계 개념에 반대된다. 우리의 일상적 주위 환경의 차원들을 넘어서면 기계론적 개념들은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동양사상가들에 의해 사용된 것들과 매우 흡사한 유기적 개념들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유기적 견해는 기계론적인 것보다 더욱 근원적이며, 양자론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의 직관주의 세계관은 서로 유사하다. 과학과 동양사상은 각각 추론적인 것과 직관적인 것의 두 능력을 함께 지닌 인간 정신의 상보적(相補的) 표현이라고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말하였다. 직관주의적 경험은 사물의 가장 깊은 본성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하고, 과학은 현대 생활에 긴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둘의 단순 종합이 아니라 동양사상적 직관과 과학적 분석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다.

사주명리를 운명종속이냐 자유의지냐, 미신이냐 과학이냐의 단순논리로 접근하기 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의 절박한 표현으로 여기는 것이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사람에 대한 이해를 보다 풍부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대한 믿음을 근대적인 과학적 잣대로 들이대기 보다는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차가운 과학과 이성의 빈틈을 메워주는 따뜻한 완충제로 바라보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오하게 해준다.

이른바 사주팔자처럼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오히려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고 인간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인생은 사주팔자가 아니라 순간마다 사건마다 자기선택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된다.”는 주장은 사주팔자 또는 다른 초월적 존재나 힘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는 주장과 결국 다르지 않은 맹신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편협하게 한다.

고대에 지금의 과학을 대신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점(占)이다. 과학적 예측의 소박한 형태 내지 초월적 형태가 바로 점이다. 어떤 면에서 미아리의 점복자나 카이스트의 과학자나 추구하는 것은 같다. 우주에 어떤 법칙성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법칙을 알아내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인간에게 운명인식이 처음으로 싹트는 것은 인력을 초월하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이다. 그 순간 인간은 불가항력에 그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지혜를 발휘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운명은 형이상화 되어 종교나 철학의 주제가 되어왔다. 또한 운명에 내재하는 초월적인 힘이나 법칙을 예견하기 위해 일찍부터 신탁ㆍ점성술ㆍ복서
(卜筮) 등 여러 가지 주술적 방법이 발달해 왔다. 시간에 길흉의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사를 판단했던 사주명리도 그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를 해체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문화의 독특성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는 게 보다 생산적이고 현명하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현실의 인간세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과거의 입태일(入胎日)과 사주가 설령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 역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로 인한 우연성과 불확실성도 더욱더 높아진다. 그러한즉 현재의 삶을 정확히 아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고, 현 시점에서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도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인생이 사주에 매우 주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고서 이후 삶의 궤적에 대한 정보를 수용한다면 언제나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할지라도 확률적으로 상당한 가능성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주명리의 운명함수에서처럼 어느 곳에서 어떤 사주를 갖고 태어나느냐, 동일한 사주라도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 동일 사주 동일 부모일지라도 어떤 전공을 하고 어느 대학을 진학하느냐, 어떤 배우자와 동료를 만나느냐 등 거의 동등한 조건으로 인생을 출발한 두 사람이 미묘한 초기조건의 차이 때문에 그 후의 인생행로가 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런 비선형적이며 무작위적인 모습 가운데도 일정한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비효과’의 창시자인 로렌츠(Edward N. Lorenz, 1917~2008)는 카오스적이라 생각되는 현상에는 인생행로의 다양한 부침과 같은 현상도 포함된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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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비효과≫의 포스터
‘만약(if) 그 때…이었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애쉬튼 커처(에반 역)의 시공(時空)을 초월한 실감나는 연기로 접해볼 수 있다.


인간의 운명은 선천적 요인(운명아)이나 자유의지(의지아)에 따른 필연적 결정이 아니라 씨줄이라는 운명아(運命我)와 날줄이라는 의지아(意志我)의 복합 작용에 의해 확률적ㆍ가능적ㆍ개연적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명에 관한 담론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보다 인간적ㆍ현실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인간의 운명은 운명결정론이나 자유의지론에서처럼 필연적인 게 아니라 운명과 의지의 상호작용에 따른 개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근대 과학-미신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는 절대적ㆍ계량적인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제시하는 상대적ㆍ확률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처럼 사주명리가 과학이냐 아니냐의 논의는 운명론적 신앙과 운명개척 의지 간의 논쟁처럼 쉽게 합일된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각 관점이 위치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운명론적 신앙과 운명개척 의지는 ‘상호 모순’ 관계가 아니라 ‘절대-상대’ 관계와 ‘상보(相補)’ 관계에 놓여 있다. 누군가 나에게 사주팔자라는 인간의 시상(時相)을 통해 인간 운명의 이치를 탐구하는 “사주명리가 과학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만약 내가 데카르트나 뉴턴, 갈릴레이라면 단연코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고,
아인슈타인이나 닐스 보어, 로렌츠라면 과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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