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수(星宿) 별자리 신앙에 나타난 북두칠성
북두칠성: 고대부터 이어진 생명과 죽음, 염원의 별
이 글은 한국 성수신앙의 기원과 전개 양상을 고찰하며, 특히 북두칠성이 우리 민족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염원 속에서 어떻게 중요한 신앙적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고대 문헌 기록과 유적, 그리고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적 흔적을 통해 북두칠성 신앙의 깊이와 연속성을 밝히고, 다른 별자리 신앙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확장한다.
성수신앙의 초기 기록과 고대인의 우주관
우리 민족의 성수신앙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의 고구려와 예(濊) 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영성(靈星)'이라는 신령스러운 별과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예에서는 별자리(성수)의 징후를 살펴 그 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하늘의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대 한국인의 믿음을 보여준다.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언급처럼, 고대인들은 각자가 타고난 별에 따라 빈부귀천이 결정된다고 믿었으며, 이는 별의 존비대소(尊卑大小)가 곧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성수 관념을 반영한다.
유적에 나타난 성수신앙: 고인돌과 고분벽화
문헌 기록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성수신앙의 증거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별자리 바위구멍, 특히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 구멍에서 찾을 수 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아득이 마을의 별자리 돌판은 청동기 시대 작품임이 분명하며, 이는 우리나라에 독자적인 천문학이 일찍부터 발달했음을 증명한다.
고인돌이 지배자의 무덤이자 제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득이 별자리 돌판이 석실 속 부장품으로 출토된 점은 고대 선조들이 사후 세계에 대한 깊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별자리가 죽음과 사후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청동기 및 초기 철기 시대 고조선 지역의 고인돌 별자리 유적과 후대 고구려 및 예의 영성 제사, 별점 기록은 성수신앙의 일정한 맥락을 보여준다.
고분벽화에서도 별자리 그림은 빈번하게 나타난다. 2006년 기준 25기의 고구려 고분에서 별자리 그림이 발견되었으며, 그중 19기(76%)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북두칠성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5세기 중엽 고구려 장천 1호분 천정에는 북두칠성이 동그란 원들로 연결되어 그려져 있으며, 그 좌우에는 해와 달, 남쪽에는 남두육성으로 보이는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음양오행론 중심의 삼재론적 세계관을 보여주며, 태양숭배신앙(삼족오)과 달숭배신앙(두꺼비와 토끼)을 동일시한 고대 우주사상을 반영한다. 달은 그믐에 죽었다가 보름에 다시 살아나는 주기적 재생과 영생불사의 근원으로 인식되었으며, [항아설화]와 같은 이야기는 두꺼비가 달의 상징이 되어 집안의 재복을 지키는 업신(―神)으로 숭배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집트나 그리스가 태양 중심의 신화관을 가진 반면,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해와 달이 함께 병행되는 구조가 주류를 이룬다. 신라 석조장식관 뚜껑에서 남성 곁에 해와 북두칠성, 여성 곁에 달과 남두육성이 조각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두칠성과 함께 주목받았던 다른 별자리들
북두칠성 외에도 우리 선조들의 신앙 대상이 되었던 여러 별자리들이 있다.
남두육성: 북두칠성과 함께 빈번하게 고분벽화에 그려졌으며, 이는 북두칠성이 죽음을, 남두육성은 삶을 주관한다는 종교적 신념을 보여준다. 『천문유초』에 따르면 남두육성은 "하늘의 사당이자 기틀"로, 정사(政事)를 헤아리고 어진 사람을 포상하며, 병사(兵事)와 수명(壽命)의 기한을 관리한다고 한다.
삼태성(三台星): 덕흥리 고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북두칠성과 함께 묘사되었으며, 고려 왕릉 및 귀족 묘실 벽화에서도 나타난다. 『천문유초』는 삼태성이 병란을 없게 하고 삼공(三公)의 지위로 덕을 베풀며, 수명과 종실, 병사를 주관한다고 설명한다. 삼불제석과 삼신할머니 기원신화인 [당금애기]의 삼형제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어, 우리 겨레에게 친연한 신앙적 의미를 지닌다.
노인성(老人星): 남부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보기 어려운 별로, 노인성을 보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어 '수성(壽星)', '수노인(壽老人)'으로 불렸다. 회갑 축하와 장수 축원을 위해 노인성을 인격화한 신선도가 많이 그려졌다.
좀생이별(묘수, 昴宿): 작은 별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음력 2월 초엿샛날 저녁 이 별과 달의 거리를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점치는 '좀생이보기' 풍속이 전국적으로 전승되었다.
북두칠성의 신앙적 의미와 계승
고대 중국의 천문학 기록인 『회남자』 천문훈에서는 북두칠성의 자루인 두표(斗杓)가 1년 12달을 차례대로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소세(小歲)'라고 하였다. 즉,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두건)에 따라 그 달을 정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사기』 천관서와 『천문유초』에서도 북두칠성을 "천제(天帝)가 타는 수레", "칠정(七政: 일월오성)의 중추이자 음양의 본원"으로, 하늘의 중심을 운행하며 사방을 통제하고 음양을 나누며 사시와 오행을 고르게 하는 매우 중요한 별로 여겼다.
이러한 북두칠성의 특별한 위상은 조선 태종의 언술에서도 확인된다. 1416년 태종은 다른 신들을 제사 지내는 것과 관련하여 "내가 눈으로 접하고 경배할 수 있는 것은 북두칠성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북두칠성을 각별히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 겨레의 이러한 북두칠성 성수 관념은 청동기 시대 고인돌의 별자리 구멍 유적에서부터 고려의 마지막 벽화 성수도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선사 시대부터 북두칠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지배층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사실은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이 당시 사람들의 사후 세계 관념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밤하늘에 언제나 떠 있으면서 유난히 빛나는 북두칠성에게 우리 선조들은 삶과 수명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투영했다.
조선 시대에 등장하는 칠성판(七星板)은 북두칠성이 인간의 삶과 죽음, 수명을 주관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명확히 보여준다. 시신을 눕히는 널판에 북두칠성처럼 일곱 개의 구멍이 뚫린 칠성판은 '고인돌의 별자리 구멍(고조선) → 고분벽화의 북두칠성 그림(고구려·고려) → 칠성판의 북두칠성(조선 이후)'이라는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북두칠성은 인간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로 신앙되었으며, '삶-죽음-무덤(북두칠성)-불멸 염원'이라는 관념을 반영한다. 이 글의 필자는 기존 학계가 조선 시대 칠성판을 별개로 인식했던 것과 달리, 칠성판을 고려 후기까지 고분에 나타났던 북두칠성 별자리 그림의 또 다른 양상으로 보며 연속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천문학적 사실만 본다면 밤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 모르나, 성수신앙은 하늘의 객관적 질서보다는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의 주관적 관념이 훨씬 중요했다. 북두칠성은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고 뚜렷한 국자 모양을 하며 1년 내내 지평선 밑으로 사라지지 않아 당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또한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통해 계절을 알 수 있었으므로 '하늘의 거대한 시계' 역할도 했다. 이러한 천문학적 사실과 인간의 성수 관념이 융합되면서 북두칠성이 우리 민족 성수신앙의 핵심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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